여백과 텍스쳐
diary
장르와 종류를 막론하고 좋아하는 것들의 공통점은 여백과 텍스쳐이다.
게임은 해상도가 너무 높지 않은 걸 좋아한다. 해상도가 낮고 텍스트가 많을수록 더욱 몰입감 있게 플레이하는 것 같다.
저해상도에서 오는 공백이 뭔가를 상상할 공간을 만들어준다.
앰비언트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.
제목과 느낌과 분위기로만 읽을 수 있는 먼 곳의 풍경을 상상하는 감각을 좋아한다.
원경으로서만 존재하고 그 외에는 공백으로 남겨둔다는 점을 좋아한다.
클로즈업을 했을 때 무슨 번잡함과 무슨 사건이 있는지 채워넣지 않는 것도 내 마음에 달렸다.
(누군가 채워넣으라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채워넣는다고 뭐라 하지도 않는다.)
텍스쳐와 질감을 느끼는 것도 좋아한다.
개별적으로만 존재하는 단일한 개체(이파리, 머리카락, 빗방울...)가 어떤 텍스쳐로 묶이는 순간과 그 폭력성을 사랑한다.
삐죽삐죽해서 괴로운 내가 그저 좀 이상하게 생긴 빗방울 속의 미생물이자 어떤 현상과도 같은 미물이 되는 지점에서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낀다.
나 또한 텍스쳐의 일부가 되어 개별성과 자아와 자의식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생각한다. 항상.
그러한 거대한 흐름인 텍스쳐가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가는 과정도 사랑한다.
그러한 음악과 그림과 영상과 물건을 좋아한다.